검은 점의 장례
아주 작은 날벌레가 어디서 날아와 읽던 책장에 앉았다. 나는 책을 잽싸게 닫아 날벌레를 죽였다. 읽기를 계속 하려고 다시 책을 여니 벌레는 죽어서 검은 점 한 개가 되어 있었다. 뜯어낼 건더기도 없었다. 날벌레의 날개도 부서지고 눈알도 다리도 심장도 다 함께 뭉개져서 작은 점 하나가 되어 있었다. 책장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벌레의 본래 모습을 그려본다. 이 날벌레도 이름은 있었겠지. 하루살이보다 더 짧은 이름. 입김이 시신을 다칠까 봐 조심스레 한마디 했다. 미안하다. 나에게 이 날벌레는 너무 작고 나는 조팝나무 꽃보다 너무 작다. 작고 큰 것은 어차피 비교하기 나름이다. 미안하다. ...... 세상에는 팔팔하던 몸이 죽어 겨우 검은 점 하나로 남는 생명이 많다. 나도 그럴까. 그러니 함부로 슬퍼하지도 울지도 말 것. 눈물 한 방울에 시신이 완전히 씻길 수도 있다. 한 슬픈 감정이 남을 씻어 없애기도 한다. 저 함부로 내뱉는 슬픔의 잔인성, 저 함부로 내뱉는 외로움의 음흉스러움, 저 함부로 내뱉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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