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에게
나는 아직도 우리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너한테 물어보고 싶지만
너 역시 나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하고 이별하는 일은
우리와는 별 상관 없이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의지와 별개로 벌어지는 일들이
세상에는 있는 법이니까
우리는 너무 빨리 만났거나
혹은 너무 늦게 만난 것일 수도 있고
너무 빨리 마음을 열었거나 혹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너무 서툴러 헤어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

오늘은 밤새도록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잠들기 전에 창문을 꼭 닫고 자도록 해
언젠가 비 오는 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다가
온 집 안을 물바다로 만든 일도 있었잖아

너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참 이상한 여자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했던 건 네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을 때의 시간이었다
우리가 헤어진 이후에 흐르는 시간보다
우리가 만나기 전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게
난 아직도 이상하게 생각된다

Y에게
슬픔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찌르곤 해
종이에 베인다거나 날카로운 펜에 찔린다거나
그런 것과 비슷해
이를테면 책갈피 속에 꽂혀 있는 콘서트 티켓이라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라거나
늦은 밤, 우리 집 창 밖에 서서
오래오래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사람이
우리가 공유했던 것들을 상기시킬 때

아픔은 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딱딱한 껍질을 뚫고
단번에 심장에 이르러
우리는 어쩌자고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함께 나누었을까
그 순간은 행복했고 모든 추억은 지나고 나면
아름다워지는 거라고는 제발 말하지 마
어쩌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의 행복을
모두 다 소모해버린 건지도 몰라
너를 만난 이후부터 나는 늘 우리가 서로를
알지 못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어
어째서 우리는 그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 두려움은 한편으로 우리가 두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에서 기인했던 거야
이제 우리는 헤어졌지만
그래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서로의 존재를 영원히 지울 수 없겠지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만나기전에
얼마나 외로웠는지에 대해 알아버렸으니까
몰랐으면 좋았을걸
내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외로움의 깊이 같은 건
정말로 정말로 몰랐으면 좋았을걸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만났을 뿐이란 걸 생각하면
이 슬픔을 이겨낼 길이 없을 것만 같아

S에게
이별의 형식이라는 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모른다
도대체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이별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이별은 엉망진창이다
그러니 그 곳에서 형식을 찾는다는 게 가능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헤어짐으로부터
어떤 식의 규칙, 진실, 길을 찾아보려고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미 나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르는 너에게
매일매일 보내지도 못하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미치도록 갈망했던 건
우리가 서로를 만나기 전부터 간직하고 있었던
외로움 때문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로움은 우리의 사랑으로 치유되었던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여
내가 네가되고 네가 나 자신이 되었을때
우리의 외로움은
우리 속에 그 뿌리를 더욱 튼튼히 내리고
무성한 가지에 무수한 잎을 매달아
우리들을 깊은 그림자 속에 가두어버렸다

우리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인정하기 싫지만 그것 때문이었지
너무 긴 이별이다
그날 이후 소문으로조차 너의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이 이별은 영원히 계속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 질문에 답해줄 유일한 사람은 나를 떠났고
이제 더욱 깊어진 외로움만
나의 오래된 친구처럼 내 곁을 지키고 있다

황경신 Morning Light, Allston,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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