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없는 시대
늙마에 미국 가는 친구
이메일과 전화에 매달려 서울서처럼 살다가
자식 곁에서 죽겠다고 하지만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저녁 인사동에서 만나
따끈한 오뎅 안주로
천천히 한잘할 도리는 없겠구나.
허나 같이 살다 누가 먼저 세상 뜨는 것보다
서로의 추억이 반짝일 때 헤어지는 맛도 있겠다.
잘 가거라.
박테리아들도 둘로 갈라질 때 쾌락이 없다면
왜 힘들여 갈라지겠는가?
허허.
세상 뜰 때
올더스 헉슬리는 세상 뜰 때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를 연주해달라 했고
아이제이어 벌린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를 부탁했지만
나는 연주하기 전 조율하는 소리만으로 족하다.
끼잉 깽 끼잉 깽 댕 동, 내 사는 동안
시작보다는 준비 동작이 늘 마음 조이게 했지.
앞이 보이지 않는 빡빡한 갈대숲
꼿꼿한 줄기들이 간간이 길을 터주다가
옆에서 고통스런 해가 불끈 솟곤 했어.
생각보다 늑장 부린 조율 끝나도 내가 숨을 채 거두지 못하면
친구 누군가 우스갯소리 하나 건넸으면 좋겠다.
너 콘돔 가지고 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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