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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진 게가 있는 정물*
아직 다 벗겨지진 않았어요. 오래 걸리진 않을걸요. 맵고 다리가 많고 징그러울걸요. 쉽진 않겠죠. 너무 가깝지도 않을걸요. 소용이 있는 옷들을 걸치고 있진 않아요. 작지도 않을걸요. 풍선껌처럼 오래 생각하다 가까스로 사라질걸요. 울고 있진 않겠지만 조용할 순 없겠죠. 기대가 크진 않을걸요. 가벼울 순 없어요. 노력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당신을 꺾으려고 팔을 늘릴 순 있어요. 유리를 닮았나요? 쉽게 상하는 멜론을 좋아해요. 멍청할 순 있지만 텅 비우기는 힘들어요. 힘들어요, 멈추는 게. 이동하는 게. 12시에 잠드는 게. 당신을 몰라요. 행복할걸요. 일흔두 개의 동그라미 속에 숨어 있는 한 개의 하트가 내 기분이에요. 재채기하다 당신을 잊을걸요. 가느다란 머리카락으로 만든 그네를 타고 내일모레로 갈걸요. 가서 웃다가, 너무 웃어서 작년으로 추방당하겠죠. 먼지 쌓인 신발을 신고 벌을 받는 기분으로 가을까지 걸어가야 할걸요. 죄책감은 없을걸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환청
새벽에 양배추를 데치며
뜨거운 물에 몸 푸는 식물을 관찰한다
식물은 비명이 없어서 좋다
색이 변하는 순간조차 고요하다

기다리는 일은
허공을 손톱으로 조심조심 긁는 일
어디까지 파였는지
상처가 깊은지
가늠할 수도 없이

이상하다
밤마다 휘어진 척추부터 꼼꼼히 흔들리는
누군가의 숨죽인 흐느낌이 들린다

오래 망설이는 사이
귀가 파래진다

수화(手話)
긴긴 술잠에 빠진 아버지
느리게 해독하는 여름
아버지의 발바닥엔 책처럼 두꺼운 각질이 쌓여 있다
가끔 무심히 만져본다
그것들을 깎아다 손바닥에 잘 모아들고
볕 좋은 곳에 묻어놓으면
무언가 피어날 것 같다
내년 봄에, 아님 그후라도

아버지는 내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자국이 생긴 채 한참을 나오지 않는다
손자국을 오래 견디다가
가까스로 원상태로 돌아온다
휴, 이제 살았다 난 괜찮아
아버지는 내 구두 속에다 대고 속삭인다

혼자 미소 짓다가 힘겨워지면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건다
내가 아빠 이제 난,
하고 끊을 채비를 하면
아버지는 그게 그래서 말이야,
망설이다 시작한다
전화를 끊고
내 귀는 여전히 흔들린다

끊어진 전화와 끊어진 마음 사이에서
도르래를 굴린다

보라색 자물쇠
이를 테면 피아노 건반의 검고 흰 막대들이
어느 것이 ‘도’이고 어느 것이 ‘솔’인지
자기들 속내를 밝히지 않기로 다짐했다는 듯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다
아침은 쿵쾅쿵쾅 제멋대로 연주되고
누군가는 항갈망제를 삼킨다 사력을 다해
이 생을 통째로 꺼뜨리려 애쓰고
이미 사라진 사과나무 아래서
하나만, 딱 하나만 붉은 우주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봉합된 눈꺼풀을 한 올 한 올 뜯으며
눈물을 좀 흘려볼까,
몇 시간째 끙끙 힘을 주고

모든 이별은 활달하기만 한데

잃어버린 발목을 찾기 위해
휘어진 길이 절뚝이며 헤매도 되나
이대로 아침이 방긋, 깨어나도 되나

뱀이 된 아버지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얼굴이 간지럽다

아버지는 빨간 핏방울을 입술에 묻히고
바닥에 스민 듯 잠을 자다
개처럼 질질 끌려 이송되었다
반항도 안 하고
아버지는 나를 잠깐 보더니
처제,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연지를 바르고 시집가는 계집애처럼 곱고
천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의 팥죽색 얼굴 위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
미소처럼, 아주 조금 찡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구경했다

기운이 없고 축축한– 하품을 하는 저 뱀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축축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위험한 기류
1.
‘앞니’를 ‘압니’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견디기가 힘이 듭니다
융단이 어울리는 겨울나무를 향해
주문을 외우죠

2.
방 안에서 빨래를 개다 서른 살이 되었다
빨간색 양말의 짝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서른다섯이 되었다
아파트 창문을 밝히던 불빛들이 하나 둘 꺼지고 있었다
내 진짜 나이는 숨죽인 열다섯,
창문이 닫히고
비로소 편안한 밤이 내렸다

문지방이 약간 내려앉았다
종이컵으로 실전화를 만들어 허공에 대보니
벽을 타고 시간이 건너다니는 소리
이마에 찍힌 도끼 자국이 더욱 선명해졌다
긴밤에 누가 내 이마 위에서 악을 쓰고 갔나?

예감
거짓말하고 싶다
내 눈은 늘 젖어 있고
나는 개 눈을 이해할 수 있다고
캄캄한 새벽
짖어대는 개들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금붕어처럼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고
사랑했고
아직도 사랑한다고
벽에 이마를 대고 말하고 싶다

발밑에서 부드러운 뿌리가 썩고 있다
축축한 냄새를 피우며

나는 흙 속에 잠겨 썩은 뿌리를 관찰하는
조그마한 딱정벌레,
이제 곧 한 세계가 질 것을 예감한
높이 1센티미터 슬픔

꽃띠 아버지
아버지 분홍 욕실 슬리퍼를 신고 슈퍼에 가신다
흔들흔들

아빠, 신발부터 그렇게 가난하다고 분홍 혀를 내밀 건 없잖아요 자꾸 시간이 흐르니까 당신에겐 발가락도, 발바닥도, 뒤꿈치도 없어졌나봐 그냥 걸어다니는 도구일 뿐 그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도무지 인식하지를 못해 아빠, 나는 자꾸 문학하는 법을 잊고 화장하는 기술만 늘어요 어떻게 하죠? 이러다 눈도 코도 입도 하나씩 더 생길 것 같아 아무도 없는 방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 몰래 흐느끼라고 내가 태어난 걸까요? 내가 30년이나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아 내 흔적을 찾으려면 어떤 자료실에 들어가야 하나요? 나는 어느 곳에 분류되어 있을까? 아빠 아빠 아빠 오래전 누가 뜨겁게 데워놓은 강물에서 내 변사체를 발견했다던데 혹시 당신이 보았나요? 아빠, 당신은 내 머리띠 같아 내 머릿속에 깊이 뿌리내린 꽃, 꽃띠 아버지, 나 거미가 된 것 같아요 자꾸 똥구멍으로 실이 빠져나오고 그 실에 목이 친친 감겨 잠이 들 것만 같아요 아빠 방바닥이나 하수구 밑을 향해 고개를 처박고 울려고, 울 준비를 하는데 실패할 때가 있어요 나는 가죽만 남은 슬픔, 슬픔이었던 옛 광장, 눈물의 유적, 아빠 나는 흔적으로서의 어둠인가봐 당신은 가끔 놀이터 그네에서 나는 쇳소리처럼 끼익끼익, 소리내어 울지만, 나는 사실 아빠처럼 슬프게 생긴 것은 본 적이 없어 아빠는 죽은 노란색을 닮아가지요 아빠, 오세요 분홍 슬리퍼를 끌고 오세요 기울어지는 건 과거가 아니라 미래랍니다 오세요 캄캄한 나를 건너 돌아오세요

해설
이런 사랑의 노래
- ‘아버지’ ‘애인’ 그리고 ‘나’
신형철(문학평론가)
2. 아버지와 나
물론 이 시집을 쓴 시인은 시엔이 아니다. 다섯 명의 아이를 낳아 기른 적도 없을 것이고, 첫째를 제외하고는 아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여섯째를 임신한 채 거리로 나선 적도 없을 것이며, 밥을 벌기 위해 몸을 파는 일을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종용하는 어머니가 있을 리도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인이 시엔보다 슬프지 않다고 함부로 말해도 되는 것일까. 도대체가 슬픔에 대해 말할 때 누구만큼 슬프다거나 혹은 누구보다는 슬프지 않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슬픈 사람은 언제나 유일무이하게, 절대적으로, 혼자서 슬프다. 지금 슬픈 사람은 그러므로 모두 시엔이다. 이 시집을 읽어보면 많은 시에서 우리의 시인이 대체로 슬픔에 잠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를 슬프게 하는 것이 대체로 주변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슬픔에 빠뜨리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슬프게 할 수도 있는 그 사람들은 셋인데, 그중 하나는 아버지다.

*내가 시인의 다음 글을 읽은 것은 저 짧은 독후감을 쓴 이후의 일이었다. “나는 스물한 살 이후로, 그러니까 아버지가 심각한 정신적 병(대체로 알코올중독증과 우울증)에 걸린 이후로 항상 두 가지 고민을 갖고 살았다. 내가 아버지를 죽이게 되진 않을까, 아니면 아버지가 나를 죽이진 않을까. 우린 정말 대단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악을 쓰며 저주를 퍼부었고, 그러다가도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는 했다. (중략) 다만 너무 많이 사랑해서, 서로가 괴로운 것이다.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아마 나는 시를 안 썼을지 모르고(자신 없지만) 웃으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관조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사랑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자주 할퀴어놓고는 돌아서서 운다. 이건 정말 진부한 얘기다. 하지만 사는 것은 대체로 진부하다.” (일곱 살 클레멘타인, 그리고 아버지. 현대문학 2008년 1월호.)

이 작은 시를 읽으며 그녀에게 시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우리가 이 시를 제대로 읽은 것이 맞다면, 그녀의 시는 끝내 접지 못한 마음이 활짝 핀 결과물일 것이다. 그것은 담을 넘어 꽃잎처럼 날아간다. 그녀는 자신의 시가 날아가다 사라져도 그만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히 많은 이들의 마음에 그녀의 시가 도착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한국시에 심드렁하면서도 그녀의 첫시집에는 기이할 정도로 깊이 감정이입을 하던 사람들 몇을 나는 알고 있다. 그들 중 하나는 이 시인이 허수경과 황인숙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허수경의 말을 황인숙의 목소리로 혹은 황인숙의 말을 허수경의 목소리로 전해 듣는 것만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실패’라는 긴 칼을 가진 사랑아/ 내 가장 예쁜 구멍으로 들어오렴”과 같은 아름다운 문장을 읽을 때면 그녀가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나는 알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구절을 쓰면서 이 시인이 자신이 살아내야 했던 저 고단한 사랑들을 힘껏 긍정할 때 나는 조금 눈물겨워진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눈물겨운 사람은 따로 있지 않겠는가. 다른 세상에서, 아버지는 그녀를 시인, 이라고 부를 것이다.


넌 계속 피어나, 안 좋은 생각이 들게 하지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향기 같아, 날 계속 긁어대
남은 게 없는 내 하루는 대체 누굴 위해 가
내가 어려 그래
어렵게 느끼는 것도 당연해 매일 그랬으니까
You don't care about how I feel
요즘 난 피해 다니기 바빠
그때 우리의 잔재 속을 헤엄쳐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 날 그리는지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 날 그리는지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가 그리운지

Look 요즘에 난 그래
시간을 잡기엔 너무 멀리 가버렸어
넌 내 기억의 반대, 내 세상은 항상 밝지
눈을 뜨지 않는 게 익숙해 이젠
모르겠지만 넌 난 묶여있지
말을 걸어봐도 대답이 없는 너의 허울
잡혀버렸어 내 기억은 여기 우리 잔흔
우리가 온전히 우리였던 때를 기억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거 하나로 버텼던 날 기억해
미안 그냥 그리워서 그때 처음 느꼈던 것들
그때 처음 들어봤고 그때 처음 맡았던 냄새
그때 처음 먹어본 음식 그때 처음 가봤던 거리
그때 처음 반겨준 모든 것들이 내 안엔 여전해
이젠 시간이 된 거 같은데 아냐, 어쩌면 평생 이럴지도
시간이 된 거 같은데 아냐, 이렇게 평생 나를 묶은채로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 날 그리는지
왜 계속 널 그리는지 왜 그때 널 그리는지

너의 마음과 나의 사랑이 가까워지도록
너의 몸과 마음과 사랑이 날 가져가도록
바닥 치는 바닷물이 다시 차오르도록 기도해
언젠가 오늘이 그리울 거라고
나의 마음속에 오늘이 가득 차도록 기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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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게 언제 오늘 내일인가
이런 일 또 저런 일이 나를 만들다
지치면 잠깐 쉬었다가
너만 유독 심한 것도 아니잖아
But baby 난
너의 일 내 일처럼 생각할게
니가 힘들 땐 내게 기대
좋아질까 나아질까 고민할 시간에
넌 그냥 나만 믿어주면 돼
넌 나만 사랑하면 돼
Trust me Trust me Trust me
나를 사랑하면 돼
너를 믿는 날 믿어주면 돼
Trust me Trust me Trust me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Trust me Trust me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Trust me Trust me
나만 따라오면 돼
넌 나를 사랑하면 날 믿어주면 돼
넌 그냥 나만 사랑하면 돼
넌 그냥 나만 따라오면 돼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I need you I need you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Trust me Trust me
넌 나만 바라보면 돼
아니야 싸우면 내가 먼저 사과할게
싸울 때마다 심장이 쾅쾅
너가 없는 상상
안돼 나는 감당
난 너가 필요해
난 너만 내 옆에 있으면 돼
Trust me Trust me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Trust me Trust me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Trust me Trust me
나만 따라오면 돼
넌 나를 사랑하면 날 믿어주면 돼
넌 그냥 나만 사랑해면 돼
넌 그냥 나만 따라오면 돼
I told you I need you I want you I told you
I need you I need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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